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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빛나고
빛날 찬, 열매 실. 찬실은 빛나는 열매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름의 뜻과 달리 나무에 달린 모과를 올려다보며 “내랑 닮았나...”를 읊조리는 찬실이는 미운 열매다. 옛말에 “어물전 망신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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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영화-쓰기 소모임을 진행하며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 대해 쓴 글입니다 !
흥미로운 글들이 많으니 관심 있으시면 둘러봐주세요~ :)
빛날 찬, 열매 실. 찬실은 빛나는 열매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름의 뜻과 달리 나무에 달린 모과를 올려다보며 “내랑 닮았나...”를 읊조리는 찬실이는 미운 열매다. 옛말에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과는 그 울퉁불퉁한 모양새로 미움받아온 과일이다. 하고 많은 과일 중에 찬실이는 모과를 보며 자신과 닮았다고 느낀다. 감독의 죽음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직업을 잃고, 자신의 젊음을 바쳐 종사한 영화판에선 쫓겨나게 생겼다. 찬실이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어떨 땐 확... 남자라도 만나 정신을 딴 데 팔아보고도 싶고…
실직 후 용달차도 못 올라오는 경사진 산골짜기 집으로 이사를 하며 찬실은 “아 망했다!”고 외친다. 그런 찬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배라는 녀석들은 감독님은 돌아가셨지만, 자기들이 있으니까 피디님은 망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찬실의 새집으로 찾아온 ‘소피’는 찬실을 위로하러 왔는지 약 올리러 왔는지, 이 공기 마시고도 다시 못 일어나면 언니는 사람도 아니라고 말한다. 때론 얄밉기도 하지만, 그래도 친한 동생인 소피네 집에서 찬실은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한다.
남자라도 만나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찬실은 일만 하느라 연애도 못 했다고, 결혼은 못 해도 영화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됐다고 한탄한다. 그런 찬실에게 ‘김영’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소피의 불어 선생으로 온 영에게 찬실은 웬일로 자신의 속을 털어놓는다. 현재는 망했지만, 예전엔 영화 프로듀서였다고 고백한 찬실은 영이 현재 영화감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운명처럼 찬실에게 찾아온 김영. 아니, 운명인 줄 알았다. 찬실은 적극적으로 대시하지만, 영은 찬실을 좋은 누나로만 생각한다고 말한다.
심란해하는 찬실은 헛것을 보기 시작한다. 바로 ‘가짜 장국영’. 한겨울에도 나시에 팬티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어딘가 이상한 장국영은 찬실이 심란해할 때마다 나타나 찬실의 속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찬실씨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가짜 장국영은 귀신이라기엔 찬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미래에 대한 정보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찬실의 인생에 비범한 팁을 전수하는 조력자라기보다는 찬실이가 외면하고 싶어 한 무의식의 형상화에 가깝다. 영에게 차이고 온 찬실이에게 장국영은 사랑과 외로움은 다른 거라고, 찬실이가 정말 원하는 걸 알아야 찬실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찬실이 정말 원하는 건 뭘까?
너 자신에 대해 더 깊이, 깊이 생각해라.
감독의 죽음으로 어이없게 영화판에서 떠나야 할 지경에 이른 찬실의 속도 모르는 듯 소피는 비교적 배부른 고민으로 툴툴댄다. 네티즌들이 자기를 보고 ‘발연기’라고 했다고 배우를 그만두느니 마느니 우울해하는 철딱서니 없는 소피에게 찬실은 “가서 너 자신에 대해 깊이깊이 생각해보라”고 혼낸다. 하지만 이 말은 찬실이 비단 소피에게만 하고 싶은 말은 아닐 것이다. 찬실은 자기 자신과도 그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한다. 영화만 하고 싶었고, 영화만 하고 싶은 줄 알았는데 자의도 아닌 거의 천재지변과 같은 타의로 영화판에서 쫓겨나게 되니 찬실은 깊은 수렁에 빠져버린 것이다. 함께 일하던 영화사 대표는 사실 프로듀서는 필요 없는 직업이라고 말하질 않나, 찬실은 자신이 이때껏 해오던 건 다 무엇이었나 고민하며 괴로워한다.
찬실이의 위기는 단순히 실직에서 비롯되는 건 아니다. 바쁘게 일만 하느라 생각할 시간도 없었던 지난날들과 달리, 이번엔 인생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찬실은 인생에 이렇다 할 성과도, 보상도 주지 않은 영화판에서 떠나야겠다고 결심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진정으로 그렇게 할 생각은 없는 걸 안다. 찬실은 자신이 어릴 적 처음으로 영화를 꿈꾸게 만든 〈집시의 시간〉이라는 영화에 대한 정성일 평론가의 대담을 테이프로 들으며 자신의 초심을 다시 되새겨본다. 영화를 ‘하다 보니까’ 영화를 했던 게 아니라, 여전히 영화를 ‘하고 싶으니까’ 영화를 해왔던 거라는 걸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찬실이는 보름달이 둥그러니 떴을 때, 잠시 멈춰 서서 달을 보고 소원을 빈다. “우리가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를 위해 기도한다. 근사한 시나리오로 등단하게 해주세요, 성공하게 해주세요 따위를 비는 게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 믿고 싶고,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을 믿고, 하고, 보며 살아갈 수 있길 염원하는 것이다. 찬실이는 영화 속에서 할머니들은 사는 게 뭔지 아는 것 같다고 말하고, 영화의 후반부에선 장국영에게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다고 말한다.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인간의 나이 차이 같은 건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한 찬실이의 말마따나 찬실이는 아직 할머니의 나이가 아님에도 할머니들이 알고 있는 삶의 진실에 가까워진다.
주인집 할머니는 찬실에게 말한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할머니는 다 늙어서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이렇게 산다고 말씀하시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어쩌면 사람의 인생이란 다 이런 것이 아닐까. 찬실처럼 오래, 깊이 꿈꾸고 애정을 가지고 행해오던 일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엎어지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그걸 다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매일 매일 살아간다. 이 영화를 제작한 김초희 감독은 유튜버 김시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래를 모르니까 살아갈 수 있다고. 당장 내일 죽을 거라는 걸 알면, 어떻게 오늘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내가 하는 일이 성공할지 안 할지 모르니까,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우리는 산다. 모르니까 용감해져서 하루하루,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해가면서, 그렇게 매 순간 진심을 다해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의 끝에서 장국영은 기차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지만, 눈이 쌓여 있는 길로 나오는 영화를 본다. 영화는 인생에 대한 은유다. 내내 어두운 터널만 지나지는 않으리라는 것. 결국 밝은 햇빛을 보게 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완벽할 것이라는 법도 없다. 기대했던 따뜻한 정원이 아니라 춥고 광활한 눈밭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제나 시련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언제나 기대했던 게 이뤄지리라는 보장도 없이 내내 알 수 없는 변곡점만 가득한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어떤지도 알 수 없다. 찬실이가 자신의 인생이 못생긴 모과 같다고 느껴도, 사실은 모과가 우리 몸에는 무지 좋은 과일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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